겉보기엔 근사했던 삶, 그러나…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고, 번듯한 명함을 가슴에 달고 출근하던 그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누구보다 성실했지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일까?’

나는 꽤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부 연구기관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성과도 좋았고, 인정도 받았고, 심지어 우수 직원 표창까지 받았다. 남편과 맞벌이로 신도시의 아파트에서 풍족하게 살았고, 대화도 원만했고,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삶. 이상적인 삶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사회가 다시 활기를 찾던 그 시절. 윤석열 정부가 한창일 무렵, 나는 극심한 번아웃과 우울감에 빠졌다. 자다가 쥐가 나서 깨고, 어깨는 항상 무거웠고, 눈을 감으면 불안이 밀려왔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내면은 텅 비어 있었다. 삶은 평탄했지만 마음은 고장 나 있었다.
내가 꿈꾸던 삶과는 달랐다
대학생 때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꿈꿨다. 자연 속에서 책 읽고, 사람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매번 다음 목표에 쫓기고 있었다. 더 높은 연봉, 더 좋은 직급, 더 큰 집. 표창을 받아도 기쁨은 짧았고, 곧 더 높은 기대가 따라왔다. 늘 부족한 것 같았고, 진정한 여유는 없었다.
퇴직을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이런 공허하고 부조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돈 많은 백수 놀이’를 시작했다. 그 시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진짜 행복은 선택과 관계에서 시작된다
나는 진짜로 깨달았다. 행복은 ‘돈’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삶’에서 온다는 것을.
돈이 없어 라면을 먹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도 찬밥에 물 말아먹는 걸 기쁘게 선택할 수 있는 삶. 해외여행이 가능해도, 국내 소도시 골목길을 걷는 걸 더 좋아할 수 있는 여유. 그런 삶에선 웹서핑조차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큰 기쁨은 ‘베풂’이었다. 장을 봐주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병원에 함께 가주는 것. 그런 작고 소박한 돌봄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존중받는다는 느낌. 그것이 진짜 행복이었다.

욕망의 순환 고리에 갇히는 사회
하지만 이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시뮬라시옹의 세계, 과잉 소비주의 사회는 계속해서 새로운 결핍을 만든다. ‘너는 아직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SNS 속 친구들의 화려한 일상은 광고보다 더 강력한 감정 자극이 된다. 우리는 알면서도 흔들린다. 연출된 이미지가 실재를 덮어버리는 시대, 우리는 그 이미지의 그림자를 좇는다.
이런 흐름은 인간의 유한성을 망각하게 만든다. 욕망은 무한하지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다. 그러나 광고는 말한다. “이 물건을 가지면 행복해질 거야.” 우리는 그렇게 학습하고, 그렇게 믿는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된다:
무한한 욕망 → 유한한 자원으로 해결 시도 → 소비량 증가 → 일시적 만족 & 더 큰 결핍 → 삶의 질 저하 → 새로운 욕망 추구

이 순환에서 우리가 진짜 잃는 것은 ‘삶의 본질’이다.
다시, 삶의 질을 묻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질을 다시 정의하고 싶다. 진짜로.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데서 오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살아내며 배웠다. 행복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 누군가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내가 존중받는 경험 속에 있다.

나는 이제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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