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회, 나는 어떻게 길들여졌는가

—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누구의 서사일까

사회는 ‘불안’보다 더 빠르게 작동하는 감정, ‘공포’를 통해 우리를 안으로 조종한다. (공포 정치, 위협 프레이밍)

“무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의 정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음은 요동친다.
뉴스를 켜면 불길한 사건들이 넘쳐나고,
광고는 끊임없이 내게 말한다.
지금 이걸 갖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별것 아닌 말 같지만, 그 문장은
내 안의 감정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포다.
그리고 그 공포는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금 하지 않으면, 너는 뒤처질 거야.”

현대의 공포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적 일러스트입니다. 지평선이 없는 광활하고 안개 낀 공간에는 흐릿한 문서, 눈, 신분증처럼 둥둥 떠다니는 불분명한 형체들이 가득하다. 안개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사람의 실루엣이 바닥에 홀로 서 있다.

감정을 조종하는 프레임: 사회는 어떻게 공포를 유도하는가

공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사회는 그 감정을 ‘설계’하고 ‘프레이밍’ 한다.

  • 위협 프레이밍(threat framing): 미디어와 정치, 교육, 광고는 끊임없이 ‘결핍’과 ‘위험’을 강조하며 행동을 유도한다.
    ⟶ “보험 없으면 위험해요.” “이 스펙 없으면 낙오예요.”
  • 공포 정치(fear politics): 정부나 권력은 외부의 적, 질병, 테러 등 ‘명확한 위협’을 강조해 통제력을 강화한다.
    ⟶ 팬데믹, 범죄 뉴스, 안보 위기 담론 등

사례: 미국 미디어에서 폭력 범죄 보도량은 1990년대 대비 4배 이상 증가했지만 실제 범죄율은 하락했다.
(출처: Barry Glassner, The Culture of Fear)

이런 메시지는 우리의 생존 본능을 건드린다.
이성보다 빠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드는 구조.
그리고 그 감정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공포는 원래 생존을 위한 감정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공포에 반응한다.

심리학은 말한다.
공포는 ‘명확한 위협’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은 ‘예측할 수 없는 위협’에 대한 긴장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이 두 감정을 거의 동시에 우리에게 던져준다.

미디어는 반복적으로 위험을 강조한다.
교육은 불확실한 미래를 내세워 경쟁을 부추긴다.
보험, 미용, 자기계발 산업은 말한다.
“당신은 지금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믿는다.
나는 뭔가를 놓치고 있을지도 몰라.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눈앞에 없는데,
공포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 안에서, 점점 정교해진다.

그때 문득, 이런 의심이 든다.
이 공포, 설계된 건 아닐까?

미셸 푸코는 권력이 감시나 강제보다
‘자기 감시’로 더 정교해졌다고 했다.
우리는 감옥 없이도 스스로를 통제하며 살아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가 유동화되며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를 조종하는 힘이
‘내 의지’가 아닌,
‘내가 느끼도록 설계된 감정’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판옵티콘(Panopticon) 모델: 판옵티콘은 중앙 감시탑에서 모든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을 볼 수 없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구조이다. 판옵티콘 안에 갇혀서 좌절하며 움크리고 있는 사람의 뒷 모습 너머로 팝옵티콘 건물의 구조가 보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불안과 공포, 그것은 통제의 언어였다

이 사회는 ‘욕망’이 아니라 ‘결핍’으로 작동한다.
당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게 만든다.

정치권력은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그 공포를 통해 내부를 단속한다.
마케팅은 당신의 피부, 미래, 안전, 관계를 위협한다.
결국 우리는 행동하지만,
그 행동은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서사를 따라가는 자동 반응일 뿐.

그래서 더는 ‘불안을 잘 관리하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겐 감정의 구조 자체를 다시 보는 질문이 필요하다.

공포 정치를 담은 개념적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전면에는 정부를 상징하는 크고 어두운 실루엣이 확성기를 들고 "안전을 위해!"라고 외치며 얼굴 없는 군중 위로 우뚝 서 있습니다. 그 뒤로는 바이러스, 폭발, 가면을 쓴 위협을 묘사한 붉은색 이미지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눈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회는 왜 불안을 설계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불안한 사람은 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 불안은 순응을 유도한다.
  • 공포는 행동을 빠르게 만든다.
  • 결핍은 소비를 자극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불안은 ‘성실’이나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일상화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한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그러나 그 감정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교하게 설계한 감정일 수도 있다.

그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 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는가?
  • 그 공포는 어디서 왔는가?
  • 그것은 진짜 위협인가, 누군가에게 유리한 이야기인가?
  •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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