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먼저 도착한 감정들

전쟁은 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먼저 움직이는 건 감정이다.

두려움, 불안, 분노, 모욕감. 이 감정들이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로 번질 때, 그것은 이미 전쟁의 구조 안으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가자 지구에 억류 중인 인질들의 친지와 지지자들이 지난달 텔아비브에서 벌인 시위 현장 - 게티 이미지

AFP via Getty Images

나는 정보도 읽지만 말하는 사람의 표정, 목소리톤, 강조점, 몸짓을 먼저 읽는다. 정치 지도자의 발언은 국민들에게 스며들고 공감대와 여론을 형성한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과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분노 어린 반격은 단지 군사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의 급류였다. 국가 전체가 하나의 감정으로 흘러가는 그 장면은 전율처럼 스며들었다. 그 흐름이 2025년 6월 이란 공습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보다 앞선 2023년 6월, 한국의 대통령은 감정은 숨지 않고 발언했다. ‘반국가 세력’이라는 언어는 경계와 적대의 감정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국민의 불안을 특정한 방향으로 묶고, 비판하는 지식인도 적으로 간주되었다.

2024년 6월, 미국 대선 토론 무대 위에서는 정보가 아닌 감정이 먼저 등장했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 아래에서 말보다 빠른 표정, 논리보다 강한 억양, 질문보다는 공격이 앞섰다. 그날 나는 정치가 아닌 감정의 전투를 본 듯했다.

그리고 8월, 인도의 한 연설에서는 자긍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조용한 어조 속에 숨은 경계와 자부의 긴장감은, 감정이 어떻게 국경을 긋는지를 은근히 말하고 있었다.

이 사건들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감정의 동원’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방식으로 연주된 분쟁의 서곡이다.

어두운 구름 아래 어둑한 사람들이 우왕좌왕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보이는 대형 스크린에는 한 연설하는 사람이 한 쪽을 가르킨다.

불안은 어떻게 통치가 되는가

감정이 조직될 때, 정치는 감정을 연료로 삼는다. 그리고 그 연료는 불안에서 비롯된다. 생존에 대한 불안, 공동체가 붕괴되고 안전이 위협받을 거 같은 두려움, ‘우리’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 정치 지도자들은 이 불안을 증폭시키며, 새로운 전장을 설계한다.

  • 위협의 과장과 외부의 적 만들기: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난민, 내부 반역자. 그들은 감정을 집중시키기 위한 무대 장치처럼 등장한다.
  • 질서와 안정의 약속: “혼란을 끝내겠습니다.” “안전을 되찾아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불안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 자유의 제한, 감시의 정당화: 테러 방지, 사회 질서, 국민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가 일상화된다.
  • 합리적 논의의 붕괴: 감정이 분노와 공포로 과열되면, 비판은 배신이 되고, 질문은 방해가 된다.
  • 통제 시스템의 영구화: 비상 상황이 끝난 후에도, 비상 체제는 일상으로 굳어진다.

정보 생태계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정보 생태계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데이터를 소비하는 동시에, 감정을 소비하고 있다.

지금의 플랫폼은 중립적 설명보다 강한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분노는 오래 머무르게 만들고, 공포는 빠르게 확산시킨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더 오래 머물만한 감정—불안, 분노, 모욕—을 가장 먼저 제시한다.

사람들은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바라보고 있는데 스마트폰 스크린에서 붉은 빛이 나와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이고 있다. 한쪽 끝에는 대형 스크린이 서 있는데 화면 속에서 자극적인 키워드들이 파도처럼 밀려나온다.

이런 방식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정보에만 반응하고, 사실보다 감정적 서사를 우선하게 되며, 스스로 판단하고 느끼는 능력을 잃어간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정보를 통해 세상을 본다기보다, 감정을 통해 정보를 선택하고 해석한다.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방식마저 외주화하게 된다.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정보에 반응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감을 잃어간다. 그리고 누군가 대신 느끼고 말해주길 원한다.


감정을 회복하는 시민성

 흐릿한 군중 속 한 사람이 손을 가슴에 얹고, 주위에 따뜻한 빛이 번지고 있다.

감정은 인간 경험의 본질이자, 때로는 사회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특정 세력은 늘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려 하고, 누군가는 그 분노를 이용하려 든다.

하지만 분노가 강력하다는 이유만으로 따를 수는 없다. 그 감정의 방향이 정말로 세상을 더 정의롭고 공평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대상이 타당한지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분노가 타인의 프레임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어떤 서사에 의해 끌려간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감정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는 일이다. 이용당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으며,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감정을 선택하는 일.

분노해도 좋다. 두려워해도 괜찮다. 다만 그 감정이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 방향이 정말 내 안에서 나온 것인지, 한번은 물어봐야 한다.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일은, 감정을 의심하는 용기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언어로 회복하는 일이다.


감정은 질문이 된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누구의 설계인가? 우리가 따라 웃고 따라 분노한 그 감정은, 정말 우리의 것이었을까?

오늘, 당신은 감정을 누구에게 맡기고 있나요?

댓글 남기기

Garden of Thought

사유정원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사유정원은 감정의 리듬을 되찾고, 존재의 중심으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나는 감정을 분석하거나 통제하려 들기보다, 그 감정이 건네는 말을 오래 듣고자 합니다. 이 정원에서 당신도 당신의 감정을 되새김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Let’s connect